탈인상주의
탈인상주의 또는 후기 인상주의로 불리는 미술 경향은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기존의 인상주의를 벗어나 새로이 확립된 형식입니다.
탈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910년에 영국의 미술비평가 로저 프라이가 '마네와 탈인상주의' 전시를 기획하며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탈인상주의 화가로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이 대표적이며 탈인상주의로 묶이지만 각 화가의 화풍은 크게 달랐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의 화가로서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화가 중 한명입니다. 그는 단지 10년 동안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으로 자살하여 삶을 마감할 때까지 생전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지만 사후에 인정받게 됩니다. 1901년에 파리에서 그림이 전시된 이후 차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 고흐는 탈인상주의 화가로 분류하며,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그의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네덜란드의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박물관에도 상당한 고흐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고흐는 아를에서 파리 시절에 이론적으로 발전시켰지만 지금까지는 일관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법은 우리가 오늘날 고흐에게서 전형적이라고 느끼는 화법입니다. 그는 남부 프랑스의 눈부신 색채에 대한 희망을 품고서 아를로 이주를 했습니다.
고흐는 즉흥적이고 재빠르게 그림을 그리고 나중에 크게 수정을 하지 않은 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는 머릿속으로 그려보거나 여러 장의 스케치를 통해서 준비했습니다. 그 방법은 그의 그림에 더 많은 생기와, 강렬함과 직접성을 부여한다고 했습니다.
고흐는 물감을 희석하지 않은 채 걸쭉하게 칠했으며, 물감을 튜브에서 짜서 직접 화폭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것을 인해서 그의 붓 자국이 입체적으로 보였고, 고흐 특유의 붓놀림을 보여주기에 아주 적합했습니다. 좀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형상화하기 위해서 그는 선을 물결 모양, 원 모양, 나선형 모양으로 배열했습니다. 1889년에 제작된 '자화상'이나 '별이 빛나는 밤'이 그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고갱
폴 고갱은 프랑스의 탈인상주의 화가로 그 역시 생전에는 평가 받지 못했으나 오늘날에는 종합주의 색채론에 입각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 널리 인정 받고 있습니다. 특히 10여년 동안 머무른 타히티에서의 작업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후에 파블로 피카소나 앙리 마티스와 같은 아방가르드 화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갱의 화풍은 클루아조니즘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대표작들은 원시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타히티의 여인들
고갱의 원시주의 화풍이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는 '타히티의 여인들'입니다. 이 작품은 1891년에 그려졌으며, 그의 타히티 체류 중에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습니다.
'타히티의 여인들'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한 후에 만난 현지 여성들을 묘사한 것으로, 그의 원시주의적인 시각과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타히티 여성들이 천연적인 자세로 바닷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에서의 생활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정서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는 그의 원시주의적인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히티의 여인들'은 고갱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개인적인 여정과 예술적 탐구를 잘 보여주며, 원시주의적인 시각과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세잔
폴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기둥, 원뿔, 구의 형태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분석하여 그림에 표현하였습니다. 세잔의 작품 중 '바구니가 있는 정물'은 테두리를 그리지 않고 붓으로 물감을 덧칠해 그려 넣어 원근법과 형태가 강조되지 않게 되었고 초점도 단일 초점이 아닌 다초점, 다시점이 되었습니다. 세잔은 이후에 피카소와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 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입체파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형태적 접근과 공간의 재해석은 입체파 예술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사물을 단순화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다루어 입체적인 형태를 단순화하고 추상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단순화는 입체파 예술가들이 나중에 큐브 형태의 다면체를 다루는 데 영감을 줬습니다.
그는 공간을 다룰 때 관점과 조형적 요소에 주목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물과 배경을 통합하고, 사물의 형태와 공간 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는 입체파 예술가들이 사물을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보고 다시 구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강렬한 색채와 강조된 조명을 사용하여 사물의 형태와 공간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색채의 사용은 입체파 예술가들이 사물을 다시 구성하고 복잡한 형태를 단순화하는 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신인상주의
신인상주의는 19세기 말의 회화양식의 하나로 인상주의를 계승하면서, 이예 과학 이론을 부여하려는 회화 양식으로 신인상파라고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쇠라와 시냑이 있고 카미유 피사로, 폴고갱, 빈센트 반 고흐도 이 파를 일시적으로 겪었습니다. 20세기의 입체파와 미래파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쇠라
쇠라는 신인상주의 창시자로 우리에게 점묘법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점묘법은 과학과 예술을 융합한 시도였기 때문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색채를 과학적 원리로 접근하여 그림을 표현하였습니다.
쇠라의 대표작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입니다. 다양한 색채와 빛, 그리고 형태들을 점묘법으로 그려내었는데 인상주의적 수법을 따르면서도 빛에만 얽매인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과학적 이론을 부여하고자 하였습니다. 인상주의가 무시한 조형 질서를 다시 구축하려고 노력한 점에서도 이 그림은 오늘날 매우 의의 있는 작품으로써 평가되고 있습니다. 화가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보고 자신의 그림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들을 배치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시냑
시냑은 초기에는 모네의 영향을 받아 인상파 화가로 시작하였으나 후에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쇠라와 마찬가지로 점묘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며 저서로 신인상주의의 이론서가 된 '들라크루아부터 신인상주의까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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